Therapeutic Laziness: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이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부활
“요즘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근데 또 이러다 망가지는 거 아닐까?”
현대인의 일상에는 ‘쉼’조차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이른바 생산성 강박(Productivity Anxiety)은 쉬는 순간조차 ‘낭비’로 느끼게 만든다. 한 팟케스트에서는 이런 생산성 강박을 '볶아치즘'이라고 명명하며 스스로를 가만두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기 성찰을 공유하기도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뭔가 도태되는 것들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흐름에 반기를 드는 개념이 등장했다.
바로 Therapeutic Laziness(치료적 게으름)이다. 단순히 ‘게으름’을 포장한 말이 아니다.
이는 현대 심리건강 및 자기돌봄 패러다임에서 매우 진지한 회복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Therapeutic Laziness란 무엇인가
Therapeutic Laziness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정신적·신체적 재충전을 도모하는 자기관리의 한 방식이다. 이 개념은 2025년 트렌드 예측 기관인 WGSN에서 소개되었고, ‘웰니스 성소로서의 침대’라는 말과 함께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그 핵심은 이렇다:
무기력하거나 나태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휴식 방식
생산성 중심 문화에 맞서는 심리적 저항 행위이자 자기 치유 행위
과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죄책감의 원천이 되었지만, 이제는 회복과 창조성의 필수 조건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왜 지금 '치료적 게으름'인가: 시대적 배경
● 팬데믹 이후의 피로감
코로나19 이후 일과 쉼의 경계가 무너졌다. 집은 일터가 되었고, 퇴근은 사라졌으며, 모든 순간이 "연결됨"의 상태에 놓였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 우울, 만성 스트레스 지표가 급상승했다. 현대인은 말 그대로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 자본주의와 과잉생산의 그림자
“쉬면 뒤처진다”는 압박은, 사실 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산물이다. ‘늘 더 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기 착취로 몰아간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의 감시 없이도 스스로를 감시하며 일을 멈추지 않는다. Therapeutic Laziness는 이 착취의 루프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행동이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저항의 형태이기도 하다.
● 정신건강 담론의 확장
과거에는 '게으름'이 병리화되었지만, 이제는 '과잉동기'와 '쉼 없음'이 문제로 진단된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오늘날의 정신건강은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에 방점을 둔다. 치료적 게으름은 이 변화의 상징이자 실천 방법이다.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나
▪ 회복 이론(Recovery Theory)
심리학자들은 일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회복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 핵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포함한 심리적 거리두기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뇌와 신경계의 정비 시간이다.
▪ Default Mode Network(DMN)의 활성화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활발히 작동한다. 멍 때릴 때 활성화되는 Default Mode Network(DMN)는 창의성, 자아성찰, 감정 정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내부적으로 가장 많은 ‘작업’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마음이 자동으로 ‘정신적 청소’를 하도록 돕는다.
▪ 인지적 탈중심화
명상과 유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생각에서 벗어나는 연습이 될 수 있다. 이는 우울과 불안을 완화시키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다. 치료적 게으름은 우리가 다시 중심을 찾도록 돕는다.
실천을 위한 제안: ‘치료적 게으름’ 이렇게 해보자
1. 무계획 시간 확보하기
하루 10~30분,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자. 핸드폰도, 음악도 없이 그냥 누워 있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처음엔 불안할 수 있지만, 반복할수록 그 시간은 ‘필요한 공백’이 된다.
2. 침대를 웰니스 존으로 만들기
침대를 단순한 수면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성소로 전환해보자. 향초, 부드러운 조명, 따뜻한 이불, 좋아하는 책 등을 두고, 그 공간에서는 어떤 성과도 요구하지 않도록 한다. 중요한 건 의식의 전환이다.
3. 자기합리화 대신 자기허용
“쉴 자격이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 “쉬는 것이 나를 유지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해보자. 쉬는 것을 보상이나 결과로 여기는 대신, 기본 권리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4. 게으름에 이름 붙이기
“이건 내 Therapeutic Laziness 시간이야.”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줄고 실천은 쉬워진다. 언어는 인식을 바꾸고, 인식은 감정을 바꾼다. 자기 돌봄의 한 방식으로 '게으름'을 선언하자.
게으름을 재정의하다
‘게으름’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써야 할 때다.
Therapeutic Laziness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절박한 회복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생산성과 효율성만이 삶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삶에는 멈춤과 느림, 비움과 여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쉼은,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리고 그 쉼은, 더 이상 미루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